폭스바겐 골프


Life

Written by 위니스밴드 on 2013. 7. 19. 00:26

폭스바겐, 말 그래도 국민차, 대중의 차, 대중적인 차

그다지 잘나보이지도 뛰어나보이지도 않은 느낌이지만 재야의 탄탄한 고수와 같은 느낌을 주는 브랜드이다. 

중간은 간다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진짜 매력은 보이지 않은 무언가이 있음이 확실하다.

멋을 부리지 않아도 멋이 있고, 화려하지 않아도 돋보이며 초월하지 않아도 뛰어난 그 무엇을 갖추고 있기에 말이다.


그렇기에 진짜 매력을 갖추고 있는 브랜드이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골프' 이다. 

해치백의 교과서라는 골프에 대한 집착은 아마 6년 전부터일 것이다.


친한친구가 이야기한 드림카, 반문했다. 왜? 골프니까. 

그 한마디로 드림카설명은 끝이었다. 

당시 난 비틀에 빠져있었다. 독특한 모양의 딱정벌레, 흔히 볼수 없는 화려함, 튀어보이는 색상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또한 친구의 말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골프 한마디면 끝났기 때문이다. 


오랜기다림과 망설임 그리고 알아보는 과정 속에서 골프가 내 품으로 왔다. 익숙하지 않은 페달질이지만 나의 소중한 차가 되었다. 나의 발이 될것이다. 그리고 생활이 될 것이다. 

물건에 애정을 쏟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드림카를 만났기에 드림을 꿈꾸겠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세상과의 대화 - 하루


Life

Written by 위니스밴드 on 2013. 5. 24. 20:19

인생을 하루로 따져보면 아침에는 태어나는것이고 밤에는 죽음으로 이르는 것 이다.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인생에서 하루란 가장 의미있는 시간이고 가치있는 날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나 역시 이러한 신념아래 많은 나날들을 열심히 살아가게 된다.


최근들어 가장 어려움은 '책임' 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피고 받아주면서 이루는 완벽한 '양육'은 무언가를 얻기위함이 아닌 메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 따르는 가장 상위의 '자아실현'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나역시 많은 책임들 속에 놓여있다.집안에서의 책임, 사회에서의 책임, 조직에서의 책임, 관계에서의 책임 

어느 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과정 속에서 부딫히고 깨지고 넘어지면서 단단해지는 내 자신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기댈곳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지금 심하게 외롭고 기댈곳이 필요하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의지하고 싶을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하나보다.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크고작은 사건과 어려움을 겪는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월급'이고 그 다음은 '세금'일 것이다.

내 자신에 대한 안위와 보상은 저 만치 가있다.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맨땅의 헤딩으로 발버둥치고 아둥바둥 해봐도 어려운건 마찬가지다.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그래도 난 부딫히고 도전한다. 낙숫물에 천년만년 끄떡없을것 같던 바위덩어리에 구멍이 생기는 것 처럼 오늘도 부딫혀본다.


그래서 


기왕 부딫히는 김에 철저하게 부딫혀보기로 했다. 깨질땐 깨지더라도 아직 부딫히기 좋은 나이니까 부딫힐련다.

그래야 내 식구들 챙길수있지 않겠나. 


내면과의 대화 3 - 음악의 시작1


Life

Written by 위니스밴드 on 2013. 5. 16. 22:21

글을쓰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종일 골똘하게 무엇을 풀어볼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발동은 상당히 오래걸려 터져나온다. 글이라는 건 참 재밌어서 한번 몰입해서 쓰게될 땐 세상의 어떠한 이야기라도 풀어서 쓸 수 있을것 같지만 그 시작은 매우 어려워 마치 초등학생들이 읽는 동화의 한문장도 풀어내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전에 하나의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내면 마치 엉킨 실타래의 끝을 조막만한 손 끝으로 풀어헤쳐내듯 술술 나오게 된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는 볼테고 보지 않더라도 그래도 이야기를 풀어 내고자 다짐했다. 그리고 이건 나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허례허식에 사로집힌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겠다. 


음악의 시작 1 


음악의 시작은 방대한 이야기로 구성될 것 같기에 아무래도 하나씩 풀어가야할 것 같다. 물론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귀차니즘이 도져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나리 또래에 있어서 음악의 시작은 동네 피아노학원 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배움에 열의가 넘치는 전형적인 한국 학부모 중 하나였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 피아노를 다닌 그때, 나를 '호로비치를 위하여'에 나오는 음악신동으로 착각한 어머니 덕에 매우 모진 음악교육을 받았던것으로 기억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이엘을 조금 빨리쳤을 뿐이다. 하지만 재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음악신동으로 알던 어머니는 정확히 2~3달 만에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 뒤로 그렇게 강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다니다 말다 하면서 초등학교 4~5학년 때까지 음악학원을 다녔으니 그 햇수는 꽤 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미용실을 하던 우리집은 집 자체가 가게이자 방이였고 놀이터였다.  우리집은 작은 단칸방에 작달나마한 거실하나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신발장 같은 마룻바닥을 개조하여 거울도 걸어놓고 손님을 받아 머리를 해주셨다. 나는 물끄러미 손님들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가위질을 감상하기도 하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다 혼나기도 했다. 갈색빛이 찬란하던 오후 3시경의 햇살이 반투명 미닫이 문을 통해 부서지듯 방안으로 들어오는 시간, 젊은 어머니의 얼굴과 함께 방안의 풍경이 기억이 난다. 어린시절이고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이었기 때문에 매일 혼자 무료하게 지내던 나를 위해 당시 부모님은 큰 마음먹고 카세트테이프 2개가 들어가는 (더블테크) 오디오를 사왔다. 그 날은 우리집의 축제날이었다.  큰 수입이 없던 우리에게 그런 오디오는 매우 비싼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 매일 오디오를 끼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름한 마이크도 하나 같이 샀는데 공테이프를 가지고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어보고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니 이질감을 느꼈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가 녹음해준 동화를 들으면서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난다. 기억속에 어머니의 낭랑한 목소리와 구수하게 연극하며 들려주는 동화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다. 

때로는 어머니와 내가 서로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어보면서 놀았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정서발달과 인지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게 오디오를 가지고 놀던 나에겐 테이프가 하나 둘 씩 늘어났는데, 그때 집에 클래식 대 전집 세트가 생겼다. 클래식 대전집은 30개의 테이프에 각각 A, B 면에 유명한 클래식 곡들이  있었는데 한글도 모르는 나는 모든 음악을 테이프가 늘어지게 들었던 것 같다. 가장 좋아했던 곳은 드보르자크의 위모레스크 였고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다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매일매일 클래식을 듣고 또 들었다. 한글을 깨우치기 전이어서 작곡가와 작품명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어머니가 옆에서 알려주어 글자형태를 기억해서 해당 작품을 찾아 들었다. 매일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악기에 대한 이해도 시작했다. 


그러던 내가 피아노학원에 다니는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매일같이 클래식을 듣던 내가 직접 피아노를 배운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마침 6살이 되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유치원을 갔다가 피아노학원으로 가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다.  첫날 건반치는법부터 악보를 익히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클래식에 대한 애찬은 그때부터였나보다.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그 시절 부터 였다. 


음악은 그렇게 시작했고 즐겁게 만나게 되었다. 


중학교 기악부, 내 별명은 잡음


바이올린은 초등학교 4학년때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산만하고 활달한 나에게 집중력에 좋다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에 따라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이올린 역시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했으니 나름 오랜시간동안 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바이올린은 그렇다할 취미를 붙이지 못해 제대로 켜지는 못했지만 나름 흉내내기는 잘 했었던 것 같다. 

1학년 음악시간, 선생님은 여기서 바이올린 할 줄 아는 사람 손을 들라고 했다. 집에 바이올린도 있고 경험도 있어서 손을 들었는데 기악부에 선출 되었다. 당시 바이올린을 배운 학생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른 즐거움에 팔려 음악이 싫어질 무렵 CA시간이 제일 재미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연습도안해가고 매번 하기싫어 뺀질거렸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기악과의 합주는 즐거웠고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소리를 다듬는 과정은 신기하면서 경이로웠다. 

나는 매번 삑사리를 내어 선생님의 질책을 받았는데 한번은 공개적으로 핀잔을 주면서 ‘잡음’ 이라는 별명을 내 주었다. 

돌이켜보면 심한 별명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반항기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더욱 반항하면서 연습도 하지 않고 일부러 틀리기도 했던것 같다. 

그래도 어린 시절 지휘자의 지휘 아래 합주를 했던 경험은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중학교 3년이 되어 드디어 기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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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과의 대화 2 - 20살 꿈의 시작


Life

Written by 위니스밴드 on 2013. 5. 15. 20:01

하루에 한마디도 안하고 살아갈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만나더라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으로만 말이다. 

침묵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것이며 무기력함은 곧 내면으로 스며들 것이다. 


20살 나의 꿈 


20살 처음 캠퍼스에 들어갔던 날. 수능을 망쳐 누구나 그렇듯 점수에 맞춰 학교에 들어간 나는 일종의 패배감에 휩싸였었다. 패배감 뒤에 설렘은 곧 찾아왔지만 자존심이 강한 나는 어디에도 내색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최대한 마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학교에 찾아간 나는 우리 과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질 못해 헤매고 있었다. 그 와중 만난 성우는 대학시절 내내 둘도없는 친구가 되었다. 일종의 동질감이랄까? 어두운구석이 있던 서로는 참 많이 맞춰갔었던것 같다. 

그렇게 학과 친구들을 찾아간 나는 학교 법학관 건물 지하에 모여있다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로 찾아갔다.

원형으로 둘러싸여서 소주에 편육을 안주삼아 나누어 먹어며 어색함을 달래며 옹기종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들어왔다.

선배는 학과 후배임을 확인하고 새로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주었고 그 어둡고 어색한 분위기의 침묵 뒤 이어진 무력한 박수와 함꼐 동그랗게 둘러쌓인 곳에서 빈공간을 찾아 비집고 앉았다. 

파놉티콘 처럼 가운데 선배가 서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최강행정이다. PM에 맞춰 구호를 따라하길 강요했고 대학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하늘(?)같은 선배의 말을 따라 모두가 구호와 교칙 비스무래 한 내용을 인식하며 차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그렇게 나쁜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해방감과 박탈감 그리고 소속감이 동시에 휘감겨 알수없는 안락함을 제공해 주었다. 이거는 과거와 다르게 선택을 통해 얻어진 소속감이랄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선택과 결정 그리고 책임은 그 시절 처음으로 터득했던 상황같다. 그리고 취기가 올라 차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져갔다. 


술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중학생때 친구들과 일탈행위를 할때도 술담배는 멀리했던 터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에서 술은 일종의 윤활유같았다. 조직의 내면에 깊숙하게 스며들고 톱니바퀴가 돌아가게 만드는 것 같은 일종의 도구였다. 

의식과 같은 술자리가 파할 무렵 앞서 일장연설한 선배가 위엄서린 목소리로 모두에게 하고싶은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한명씩 자리잡고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했던것은 나는 행정학과에 입학했고, 행정학과에 들어온 대다수의 학생들의 장래희망은 '공무원'이라는 것 었다. 


그와중 나는 일탈행위를 저지른것 같다. 내 차래가 되어 나를 소개할때 '내 꿈은 C.E.O' 라고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사실 그당시 CEO라는 영어단어는 흔한 단어가 아니었다) 선배는 이야기를 건냈다. '야 니 CEO가 뭔뜻인줄 알어?' 일종의 비소 섞인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는 왜 너는 다르냐, 너는 왜 튀냐, 너가 뭔데 그런 단어를 품었냐 라는 것이었다. 

취기 어린 목소리로 조용하게 이야기 했다. '네 취프 이그제큐티브 오피서 입니다, 최고경영자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저런 멋진 단어 대신 '사장님' 이 되고싶었다고 말할 수 도 있었지만 은근한 젊은날의 쫀심은 구지 CEO라는 단어를 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자 선배는 그래? 열심히 해봐. 라는 말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누구에게는 스쳐지나갈 이야기가 될지도, 상황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나의 청춘의 시작점은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고3내내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갈때 내 입으로 나온 처음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복잡한것도 잘 알지못했다. 멋진 사장이되어 큰 회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내 스스로 입을 통해 나온 나의 꿈이었다. 


그때 당시 친구들 중 일부는 원한는 대로 공무원이되었거나 경찰, 학교 행정직, 병원 행정부서 등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그 중 나와 비슷한 꿈을 꾸었던 한명의 친구만 학원 원장이 되어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다) 


막연한 꿈이 현재는 현실이 되었고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로 조직이 구성되어있다. 비록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조직이고 느리게 걷고 있는 조직이지만 하나의 목표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구절중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네 끝은 창대하리라' 






 

내면과의 대화 1 - 무제


Life

Written by 위니스밴드 on 2013. 5. 14. 19:39

내면과의 대화1


내면과의 대화라...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내 신상에 관한? 내 상황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주저리주저리 아무런 맥락없이 이야기가 흘러갈게 분명하다. 보이는 풍경 그대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이야기를 한번 끄집어 봐야겠다. 


불현듯 고등학교 졸업식이 떠오른다. 두발자율화가 안되었던 탓에 빡빡머리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졸업식날 멋지게 보이고싶어 머리에 잔뜩 힘을주고 어린동생과 부모님을 의기양양하게 바라보며 졸업식에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을 꺼내보면 촌스러울 만큼 부끄럽고 머리큰 여드름투성이 한 아이가 사진속에 있지만 그날 풍경은 참 색다르다. 마치 갈색톤의 옛 사진 처럼 말이다. 

2002년 2월 약 1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졸업식이 떠오르는 건 무엇때문일까? 며칠전 다녀간 친구들 탓일까? 

그날 여러친구들과 사진도 찍었고 즐거움을 나누었지만 그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로 나간다는 설레임탓에 우리는 제대로된 작별을 기하지 못했던것 같다. 

반 아이들과 이제 다시는 재회하지 못할 그 친구들의 기억속에 난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심히 궁금하기도 하다. 

졸업식 종소리가 울리고 선생님의 훈화말씀과 여러 친구들의 작별인사. 대학을 가지 못한 아이, 원하는 대학을 간 아이 모두 할 것없이 새로운 시작과 또다시 행해야하는 재수의 걱정에 혼돈의 20살을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고등학생의 청춘을 바친 밴드부 후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쌀쌀한 날씨속에서 남들 다 입고있던 더플코트 (떡볶이 코트)를 입고서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다. 아마 늘 그렇듯이 중국집에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즐거운 식사를 했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본 나의 인생은 희극이었지만 가까이서 본 내 인생은 비극이라고 할만큼이나 어려움과 격동속에서 자랐지만 늘 가족과 행복함속에 지내지않았나 생각된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 그 설렘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정도이며 내 인생에 새로운 도전의 소용돌이의 시작에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시작한 20살이었다. 20대 시작이었다. 






미래지향적이었던 나에게 태클이 들어오다


Life

Written by 위니스밴드 on 2013. 5. 14. 19:18

요근래 며칠동안 입원하면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쓰지않는것에 대한 갈망, 그리고 그리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신경쓰고, 누구를 위하고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시간동안, 나와의 대화가 줄어들었다.

젊은 시절 그 많던 대화는 이제 어디로갔는지 모를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흐름도 잃어버린 것 같다. 


며칠전 교통사고가 났다. 내 인생에 이렇게 충격적인일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아찔한 사건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일중독에 걸린것을 알아버렸다. 

어릴적 수술을 받을때도, 전신마취로 끌려가던 그 시간에도 나를 잃어버린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느꼈다. 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얻은것도 있다.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아리송한 한치앞을 매번 분석하고 파악하고 미리 홀겨보려고 애썼던 삶을 살았다. 트렌드, 미래, 내일, 등등의 희망지향적인 희망을 위한 삶에 치우쳐 지금 내 모습을 잃어버린것같다. 

현재를 즐기고 현재를 위해서 살아야하다는 것은 잃어버린채 말이다. 

이 조용한 시간에 나를 위한 시간은 내 인생에서 무척이나 갚진 나날들이 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보지않을 이곳에서 (또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이곳에서) 계속해서 속에 담긴 이야기를 편하게 이야기하고싶다. 


앞으로 하나씩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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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이유


Life

Written by 위니스밴드 on 2013. 3. 11. 21:13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이유


생각이 사라졌다. 마치 그자리에 없던마냥 내 생각을 담아낼 그릇이 사라졌다.

예전 고등학생때 끙끙거리며 만들었던 나의 첫 위니하닷컴 역시 아무도 찾지 않는 html 바다에 버려졌고

내가 소통하고 내가 쓰려했던 이야기를 하지못한채 몇년이 지난 이제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무언가 꾸미고 담아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나마 내 이야기를 남겨둘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려한다.


블로그에서는 몇가지 다짐을 새웠다.


1. 솔직해지자. 

   - 아무도 찾지 않을 곳 마냥 이곳에서는 솔직해보자. 불편함이 있다면 비공개로 걸어놓더라도 솔직해 보자. 

   - 최대한 솔직해보자는 게 내 심정이다.


2. 온전히 내것으로 채우자.

  - 인용이든 참고든 뭐든간에 내것으로만 채워보자. 

  - 그리고 내 이야기를 다루어보자. 


3. 일히일비하지말자

  - 누군가의 방문기록에 얽매이지 말자

  - 무식하더라도 비난과 비판에 신경쓰지말자


이렇게 다짐하고 나니 커다란 공간을 하나하나 채워나갈 듯 싶다.

솔직히 이것도 얼마나 갈지 모른다. 한번 만들고 꾸준한 이야기를 담아두는게 그리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씩 도전해보련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며 돌이켜 다시 읽진 않더라도 그 순간 담아낸 감정은 소비되어 온전히 머리와 마음을 비워내기 때문이다. 


위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