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쓰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종일 골똘하게 무엇을 풀어볼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발동은 상당히 오래걸려 터져나온다. 글이라는 건 참 재밌어서 한번 몰입해서 쓰게될 땐 세상의 어떠한 이야기라도 풀어서 쓸 수 있을것 같지만 그 시작은 매우 어려워 마치 초등학생들이 읽는 동화의 한문장도 풀어내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전에 하나의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내면 마치 엉킨 실타래의 끝을 조막만한 손 끝으로 풀어헤쳐내듯 술술 나오게 된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는 볼테고 보지 않더라도 그래도 이야기를 풀어 내고자 다짐했다. 그리고 이건 나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허례허식에 사로집힌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겠다.
음악의 시작 1
음악의 시작은 방대한 이야기로 구성될 것 같기에 아무래도 하나씩 풀어가야할 것 같다. 물론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귀차니즘이 도져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나리 또래에 있어서 음악의 시작은 동네 피아노학원 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배움에 열의가 넘치는 전형적인 한국 학부모 중 하나였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 피아노를 다닌 그때, 나를 '호로비치를 위하여'에 나오는 음악신동으로 착각한 어머니 덕에 매우 모진 음악교육을 받았던것으로 기억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이엘을 조금 빨리쳤을 뿐이다. 하지만 재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음악신동으로 알던 어머니는 정확히 2~3달 만에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 뒤로 그렇게 강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다니다 말다 하면서 초등학교 4~5학년 때까지 음악학원을 다녔으니 그 햇수는 꽤 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미용실을 하던 우리집은 집 자체가 가게이자 방이였고 놀이터였다. 우리집은 작은 단칸방에 작달나마한 거실하나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신발장 같은 마룻바닥을 개조하여 거울도 걸어놓고 손님을 받아 머리를 해주셨다. 나는 물끄러미 손님들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가위질을 감상하기도 하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다 혼나기도 했다. 갈색빛이 찬란하던 오후 3시경의 햇살이 반투명 미닫이 문을 통해 부서지듯 방안으로 들어오는 시간, 젊은 어머니의 얼굴과 함께 방안의 풍경이 기억이 난다. 어린시절이고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이었기 때문에 매일 혼자 무료하게 지내던 나를 위해 당시 부모님은 큰 마음먹고 카세트테이프 2개가 들어가는 (더블테크) 오디오를 사왔다. 그 날은 우리집의 축제날이었다. 큰 수입이 없던 우리에게 그런 오디오는 매우 비싼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 매일 오디오를 끼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름한 마이크도 하나 같이 샀는데 공테이프를 가지고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어보고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니 이질감을 느꼈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가 녹음해준 동화를 들으면서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난다. 기억속에 어머니의 낭랑한 목소리와 구수하게 연극하며 들려주는 동화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다.
때로는 어머니와 내가 서로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어보면서 놀았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정서발달과 인지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게 오디오를 가지고 놀던 나에겐 테이프가 하나 둘 씩 늘어났는데, 그때 집에 클래식 대 전집 세트가 생겼다. 클래식 대전집은 30개의 테이프에 각각 A, B 면에 유명한 클래식 곡들이 있었는데 한글도 모르는 나는 모든 음악을 테이프가 늘어지게 들었던 것 같다. 가장 좋아했던 곳은 드보르자크의 위모레스크 였고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다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매일매일 클래식을 듣고 또 들었다. 한글을 깨우치기 전이어서 작곡가와 작품명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어머니가 옆에서 알려주어 글자형태를 기억해서 해당 작품을 찾아 들었다. 매일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악기에 대한 이해도 시작했다.
그러던 내가 피아노학원에 다니는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매일같이 클래식을 듣던 내가 직접 피아노를 배운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마침 6살이 되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유치원을 갔다가 피아노학원으로 가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다. 첫날 건반치는법부터 악보를 익히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클래식에 대한 애찬은 그때부터였나보다.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그 시절 부터 였다.
음악은 그렇게 시작했고 즐겁게 만나게 되었다.
중학교 기악부, 내 별명은 잡음
바이올린은 초등학교 4학년때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산만하고 활달한 나에게 집중력에 좋다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에 따라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이올린 역시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했으니 나름 오랜시간동안 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바이올린은 그렇다할 취미를 붙이지 못해 제대로 켜지는 못했지만 나름 흉내내기는 잘 했었던 것 같다.
1학년 음악시간, 선생님은 여기서 바이올린 할 줄 아는 사람 손을 들라고 했다. 집에 바이올린도 있고 경험도 있어서 손을 들었는데 기악부에 선출 되었다. 당시 바이올린을 배운 학생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른 즐거움에 팔려 음악이 싫어질 무렵 CA시간이 제일 재미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연습도안해가고 매번 하기싫어 뺀질거렸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기악과의 합주는 즐거웠고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소리를 다듬는 과정은 신기하면서 경이로웠다.
나는 매번 삑사리를 내어 선생님의 질책을 받았는데 한번은 공개적으로 핀잔을 주면서 ‘잡음’ 이라는 별명을 내 주었다.
돌이켜보면 심한 별명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반항기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더욱 반항하면서 연습도 하지 않고 일부러 틀리기도 했던것 같다.
그래도 어린 시절 지휘자의 지휘 아래 합주를 했던 경험은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중학교 3년이 되어 드디어 기타를 만났다.